벌써 1년이다. 다시, 정선앓이_1 무릉도원(武陵桃源)도, 계림(鷄林)도, 세상의 모든 강과 풍광도 정선을 만나면 고개 숙일 일이다. 하물며 나 같은 범부야 말해 무엇하랴, 싶은 순간 밤이 왔다. 그날 밤 알았다. 오래전 정선의 지명이 도원이었다는 것을. 전윤호 시인은 시집 "늦은 인사"에서 각기 다른 이름의 연작시 여러 편에서 '도원'을 알렸다. 문장은 이렇다. '도원 사람들은 기록을 남기는데 관심이 없었다 다만 나라가 바뀌자 벼슬을 버리고 산중에 스며든 이가 굶주림에 지쳐 헤매다 그곳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한동안 잘 지내던 그는 무슨 연유인지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실수를 깨닫고 다시 돌아가려 했으나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하략)'('해제(解題)' 중에서). '도원은 원래 길이 막히지 않았다(…)어느 해인가 산에 바위를 굴리고 개복숭아와 가시나무를 심어 관리가 오는 길을 끊었다(…)안과 밖이 서로 잊으니 애달픈 일이 없고 마침내 도원이 되었다'('유래(由來)' 중에서). '우리 동네에서는/까닭 없이 사람들이 사라지면/도원으로 갔다고 했다/한번 가면 너무 좋아/가족들도 잊고/돌아오지 않는 곳/흉년에 주린 노인들과/사랑에 주린 젊은이들이/밤길을 헤매다/가게 되는 곳/높은 뼝대 아래/시퍼런 물살이 도는 소 근처에/들어가는 동굴이 있다고도 했다'('그곳' 全文) 도원은 이렇게 대(代)를 이어 불립문자로 자라 유전자에 실려 시인의 가슴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밖에 '하늘 닭', '나무 돼지', '술 샘', '여자 성인식' 등 시집을 통해 세상에 나온 도원에 얽힌 사실 같은 전설, 전설 같은 사실을 시인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정선이 도원이었다. 가리왕산 언저리 숙소에서 별들을 덮고 밤을 지샜다. 아침은 닭 우는 소리와 함께 왔다. 서둘러 평상에 앉아 '도원진녀(桃園眞女)'가 내리는 오묘한 차를 마셨다. 차는 하늘에서 흘러 내 몸을 지나 도원으로 들어가리라, 생각했다. 몇 잔의 차에 생각조차 잊고 가리왕산을 보다가 눈으로 목으로 차들이 터져 멈추지 않았다. 오래도록 몸을 밀어내며 차들이 솟구쳤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순간, 알았다. 내 영혼은 정선에 저당 잡혔다는 것을. '정선앓이'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 1년. 잠시 정선과 영월을 다녀왔다. '길잡이 늑대'가 없어 정선의 속살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지만 1년 그리움의 더께는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정선에서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또 1년을 견딜 것이다. 해가 가기 전에 다시 가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11월이 지나기 전에 정선 5일장이라도 가보길 권한다. '2016 수원방문의 해'를 맞는 길라잡이가 그 곳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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