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부터 '경기적십자 70년사'를 집필하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적십자의 씨앗을 뿌린 이는 앙리 뒤낭이다. 뒤낭은 1859년 이탈리아 통일전쟁터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총탄에 맞아 죽거나 부상당하는 참상을 보다 못해 인근 농가의 부녀자들과 함께 그들을 구호한 것이 인도주의의 씨앗이 됐다. 그러니까 적십자는 전쟁터에서 탄생한 것이다.
뒤낭은 여기서만 멈추지 않고 이때의 경험을 '솔페리노의 회상'이란 책으로 써서 세상에 알렸을 뿐 아니라 1863년에는 국제적십자 창설회의에 이어 1864년에는 최초의 제네바협약 제정을 주도하는 등 적십자 운동에 온 몸을 바쳤다. 현재 스위스 쥬리히 공동묘지에는 그의 묘비가 세워져 있는데, 부상자를 치료하는 모습이 조각된 석상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국제적십자 창시자 쟝 앙리 뒤낭 1828년 출생, 1910년 사망.' 우리나라에 적십자사가 설립된 것은 1905년이었고 경기적십자사 창립은 1947년도였다. 광복의 기쁨과 함께 불어 닥친 사회의 혼란 속에서도 인도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탄생한 경기적십자사가 올해로 70주년의 역사를 이룩한 것이다. 이는 참으로 뜻 깊은 것이, 험난하기 그지없었던 지난한 세월 속에서 이룩한 헌신과 봉사의 발자취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70년사 집필 청탁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단순한 년대식 역사 기록에만 그쳐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70년 역사 속에 담겨 있는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헌신과 봉사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마음을 편찬위원회에서도 기꺼이 수용해줘 현재 즐거운 마음으로 집필에 임하고 있고, 각 분야의 관계관 및 봉사자들이 자신들의 생생한 체험과 봉사활동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보내오거나 직접 펜을 들어 회상의 글을 적고 있다. 나는 집필을 하면서 몇 가지 느낀 게 있다. 첫째로 느낀 것은, 우리 주위에는 어려운 이웃· 소외된 이웃·외로운 이웃이 생각보다도 많다는 것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따뜻한 손길을 바라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와 함께 이는 곧 함께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지워진 짐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느낀 것은, 봉사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왔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꽃이 된다는 것이다. 누가 시키거나 마지못해 하는 봉사는 진정한 봉사가 될 수 없다는 것. 이는 다년간 봉사활동을 한 체험자들이 특별히 힘주어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세 번째로 느낀 것은, 봉사는 아주 작은 것이되 때론 용기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봉사자의 글 한 도막을 여기 소개한다. '길가에 핀 들꽃이 화려하지 않다하여 밟아 버린다면 꽃은 피어도 상처투성이의 꽃이 되겠지만, 잠시 주의를 기울여 비켜 지나가면 아름답고 은은한 야생화가 된다. 어렵고 외로운 삶이라하여 무시하고 외면한다면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의 자존심은 무참히 짓밟히고 상처투성이의 세월을 보내게 되겠지만, 그분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여 준다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달을 것이며 심장이 내는 박동소리의 소중함을 깨달을 것이다. 나누고 베푸는 것, 그것은 또 다른 채움을 가져온다.' 네 번째로 느낀 것은, 최선의 봉사는 결국 자신에게 기쁨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간 많은 봉사자들이 이를 체험담에서 털어놓았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설 때는 가슴이 뿌듯하고 행복했다는 글이 의외로 많았다. 그러면서 봉사를 받는 이는 결국 남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도 고백했다. 수해복구 중인 수민시민봉사자들 끝으로 내가 느낀 것은 우리 사회에는 숨은 봉사자들이 곳곳에 참 많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누가 하라고 해서도, 그 어떤 대가를 바라서도 아니었다. 스스로 마음속에서 우러난 그 인간애 하나로 이웃을 위해 땀을 흘리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런 그들이 더욱 어여뻐 보이는 것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오늘 이 시각에도 적십자 운동에 땀을 흘리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