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칼럼] "화성에 억새 심은 이유, 그런 깊은 뜻이 있었어?"
김우영 언론인
2021-10-29 14:39:03최종 업데이트 : 2021-10-29 14:38:25 작성자 : e수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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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을이 깊어간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늘 말로만 여행을 떠나는 나는 오늘도 그저 수원의 거리와 골목, 수원천. 화성 성곽길과 팔달산, 광교산길을 산책한다.
가을이 깊어지면서부터는 화성 성곽길로 접어드는 일이 많다. 억새꽃이 장관인데다 걷다가 만나는 팔달산과 장안공원, 동공원의 나무들이 화려한 단풍으로 치장하고 나를 반기고 있기 때문이다. 창룡문과 동북공심돈 사이 성 밖 감나무 숲엔 홍시가 주렁주렁 달려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창룡문~동북공심돈 성 밖 감나무에 가득달린 홍시(사진=김우영)
어디 하늘빛과 나무와 풀들만 아름다운가. 충만한 축복 같은 가을햇살을 받으며 화성을 걷는 시민과 관광객들의 표정에도 더 없이 밝고 평화로운 미소가 가득하다. 역시 가장 좋은 기운은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들의 아름다운 미소다.
가을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성의 명소는 화서문 서쪽 서북각루 언덕 화서공원에 조성된 억새 꽃밭이다. 특히 저녁 무렵의 햇살을 받아 빛나며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에 반해 가을 산책길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향한다.
서북각루 성 밖의 억새 군락지(사진/김우영)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곳은 또 있다. 연무대 동쪽 동북공심돈 밖에 억새밭도 그림 같다. 방화수류정·용연 옆 언덕과 남수문 동쪽 동남각루 아래의 억새 숲도 볼만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동남각루 아래 억새는 일부가 넘어지고 베어져 올해는 볼품이 없다.
동남각루 아래 억새밭(사진/김우영)
지난해 이맘 때 한 신문의 칼럼에서도 언급한바 있다.
산책을 함께 다니는 ㄱ이 "화성에 왜 억새가 많은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ㄱ은 수원지방의 옛길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며 도시계획 전문가다. '화성에 미친 사람들' 중의 한명이다.
"그거야 당연히 예쁘라고 심어놓은 게 아니냐"고 하자 "성을 축성하면서부터 심었다"고 했다.
첫 번째 이유는 시계(視界)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억새군락지에는 다른 나무들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 어른들은 '묵은 밭에 억새가 자라기 시작하면 그 밭에 농사를 짓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억새꽃은 말려 불화살을 만드는 재료로 썼다는 것이다. 아하, 그렇구나.
그 후에 억새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지붕 이엉으로도 사용했는데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억새를 쓰고 있다. 볏짚 이엉은 2~3년이 지나면 교체해야 하는데 억새이엉은 20~30년 동안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수분 흡수율이 낮기 때문이다.
억새는 민간 치료제로도 사용됐다. 줄기나 뿌리를 약으로 쓰는데 이뇨작용을 돕고 해열, 해독, 풍사, 암 치료에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교상(咬傷), 즉 호랑이나 늑대, 뱀 등 동물에 물렸을 때 치료제로도 썼다는 기록도 있다. 중국 당나라 진장기(陳藏器)가 편찬한 의서 '본초습유(本草拾遺)'에는 '사람과 가축이 범과 승냥이 등에 물려 상처를 입은 경우에 쓴다'고 기록돼 있다.
뿐만 아니라 독이 없어 보릿고개 때 구황식물로 베어다 먹었다고 한다.
가축의 사료로도 사용됐다니 화성 성곽주변에 심은 까닭이 있는 것이다.
억새는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는 풀이다. 줄기 속이 비어 있기에 결백한 사람 같은 식물이라는 말도 있다. 또 바람에 잘 흔들리지만 웬만하면 부러지지 않는다. 불을 질러도 다음해엔 또 새싹을 지상으로 밀어낸다. 생명력이 억세다고 해서 억새인가.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 시 '풀' 일부
김수영 시인이 이 시를 쓸 때 억새를 연상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 계절이 다가기 전 화성으로 가보시라. 무리 진 억새꽃이 가을바람에 춤추며 격하게 그대 반겨 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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