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6월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자 3.1운동 100주년이어서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중국 상해-가흥-항주 항일유적지도 답사했다. '수원시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수원시 탐방단 일원으로 다녀온 것이다.
국내 여행도 즐거웠다. (사)화성연구회 봄 답사를 통해 청산도의 진성(鎭城)을 보고 환상적인 유채꽃밭에 파묻혔다. 풍광이 아름다운 청산도 둘레길 일부도 걸었다. 가을엔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 문학인 제주포럼에 초청돼 3박4일 동안 새로운 추억도 만들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외국은커녕 국내 여행도 하지 못했다. 최근 셋째 동생의 회갑을 맞아 형제들끼리 제주도에 다녀온 것이 고작이다.
나의 첫 해외여행지는 1991년 중국 연변과 북경이었다. 당시는 두 나라가 수교되기 전이어서 중국 입국이 까다로웠다. 연변 사회과학원의 초청장을 받은 뒤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선상비자를 받아 중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사진> 중국 상해 여행 중 먹은 음식들. 여행의 큰 재미 가운데 이걸 빼놓을 순 없다.
당시 지역 신문사 문화부장으로서 중국 연변 조선족 동포들의 생활상을 취재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보름동안 열심히 취재하고 돌아왔지만 기사는 신문에 실리지 못했다. 곧바로 해직을 당했기 때문이다. '노조 배후조정'을 했다는 이유였다. 고생하는 후배 기자들이 안쓰러워 술과 밥 몇 번 사줬을 뿐인데.
두 번째 외국여행지는 미국과 캐나다였다. 수원시립교향악단 북미 순회연주회 취재차 동행했다. 미국 시애틀에 도착, 캐나다 밴쿠버, 미국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산디애고를 거쳐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까지 돌아보는 코스였다. 인도네시아 반둥시와의 자매결연, 호주 타운스빌시와의 자매결연, 시드니 세계합창제에 초청된 수원시립합창단 취재여행도 다녀왔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인데도 좀처럼 가지 못하다가 수원의 '극단 성'이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아시아 미트 아시아'연극제에 초청됐을 때 동행한 뒤로 물꼬가 터진 듯 자주 다녔다. (사)화성연구회 해외 성곽답사여행으로만 두 번을 다녀왔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오사카를 통해 여러 곳을 여행했다. 여행사를 하는 후배가 있어 몇 푼 안들이고도 수시로 들락거렸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교토의 기요미즈테라(청수사-淸水寺)였다. 처음부터 낯설지 않았다. 마치 이전 생의 한 장면이 겹쳐지는 듯했다. 꼭 다시 오리라 다짐했는데 벌써 세 번이나 다녀왔다. 일본 여행 횟수를 따지면 스무 번은 족히 될 것이다.
중국여행도 스물 댓 번은 된다. 첫 번째 취재 여행 이후 갑자기 중국에 갈 일이 많아졌다. (사)화성연구회의 성곽 비교답사 여행으로 대여섯 번 이상 다녀왔고, 누군가 중국에 가자면 그냥 따라 나섰다. 몇 년 전에는 해외문화재 환수 운동을 하는 ㄱ교수가 "형님, 3일 후 중국에 있는 한국문화재를 보러 가는데 함께 갑시다"라고 해서 급행으로 비자를 내고 다녀오기도 했다. 평택항 소무역 상인(일명 보따리상)들의 '두목' 역할을 하는 ㅊ형의 배려로 배를 타고 다섯 번이나 중국에 다녀왔다. 중국여행 중 가장 인상에 남은 여행지는 실크로드였다. 꿈에서도 보이곤 했던 돈황 막고굴, 교하고성과 고창고성, 천산 천지, 월아천, 신발창이 녹아 떨어 질 정도로 뜨겁고 광활했던 사막, 우수맥주, 투루판의 청포도, 지열이 영상 70도가 넘었던 화염산(실제로 땅에 묻어 익힌 계란을 판매한다) 앞 천불동(베제클리크), 투루판의 포도밭과 위그루족 주민들의 선한 미소...이 모든 것을 6년이 지난 현재까지 내 몸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중국실크로드 여행은 몇 년 후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사마르칸트로 이어졌다. 실크로드 여행이 앞으로 더 계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현지인 모자를 써봤다.
지금까지 중국,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인도네시아, 몽골, 대만, 베트남, 캄보디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땅을 밟아봤다.(멕시코도 살짝) 아직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일이 없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난 참 복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여행은 중독성이 있어서 텔레비전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 '세계테마기행' 등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보면 또 마음이 설렌다. 하늘에 높이 떠가는 비행기만 봐도 "아, 나도 여행하고 싶다"란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생각해 보면 길 위에 설 때 가장 살맛이 났다. 제일 행복했다.
내년엔 가능하겠지? 다시 길 위에 서기 위해서 여행경비를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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