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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늘에서 눈부신 하늘을 본다
수원화성 밖의 보호수를 찾아서
2024-09-03 10:04:02최종 업데이트 : 2024-09-03 10:04:52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파장동 느티나무. 이 길은 정조대왕에 현륭원 참배 갈 때 길이었다. 느티나무는 정조대왕이 행차 때마다 이곳을 지나는 것을 지켜봤을 것이다.

파장동 느티나무. 이 길은 정조대왕에 현륭원 참배 갈 때 길이었다. 느티나무는 정조대왕이 행차 때마다 이곳을 지나는 것을 지켜봤을 것이다.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서 있는 나무들이 있다. 오랜 세월을 지나와 보호수라는 팻말을 달았다. 한여름 더위에도 보호수 아래는 그늘이 시원하다. 그늘에 누우면 나뭇잎 사이로 하늘도 볼 수 있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걱정 없이 떠다닌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들어오는 초입에 지지대 고개가 있다. 고개에서 광교산 쪽으로 프랑스 참전 기념비가 있는데, 여기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괴목정교가 있다.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 행차길 중요 지점마다 세운 표석이다. 이곳은 옛길이라 길가에 나무가 많은데 그중에 느티나무(파장동 411)가 있다. 1982년 지정 당시 470년이나 됐다. 지금은 500년이 훌쩍 넘었다. 키가 13m, 흉고 둘레 5.6m라고 서 있는데, 지금은 더 자랐다. 이 길은 정조대왕에 현륭원 참배 갈 때 길이었다. 그러니 느티나무는 정조대왕이 행차 때마다 이곳을 지나는 것을 지켜봤을 것이다. 
수일초등학교 정문. 초등학교 아이들이 등교하면서 나무를 본다. 가슴속에 품은 꿈을 나무와 나눴을 것이다.

수일초등학교 정문. 초등학교 아이들이 등교하면서 나무를 본다. 가슴속에 품은 꿈을 나무와 나눴을 것이다.


  파장동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더 있다. 수일초등학교 정문 입구에 서 있다. 학교는 2004년에 개교했지만, 나무는 511년 나이를 먹었다. 어린아이들이 양팔을 벌려 안으려면 세 명은 돼야 할 정도로 크다. 교문에 서 있는 이유는 학교를 지으면서 나무를 베지 않고, 정문에서 살게 했다. 덕분에 초등학교 아이들은 등교하면서 나무를 본다. 가슴속에 품은 꿈을 나무와 나눴을 것이다. 이 나무는 광주 이씨 문중에서 무관을 지낸 사람이 심었다고 전한다. 실제로 이 동네에는 현재도 광주 이씨들이 살고 있다. 
호매실동 소나무. 몸집이 커져 약간 기운 것 외에는 건강한 모습이다. 주변 숲에서도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기품을 유지하고 있다.

호매실동 소나무. 몸집이 커져 약간 기운 것 외에는 건강한 모습이다. 주변 숲에서도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기품을 유지하고 있다.


  호매실동(629-2)에 소나무가 있다. 보호수로 소나무는 드물다. 242년의 세월 동안 비바람을 이겨냈다. 몸집이 커져 약간 기운 것 외에는 건강한 모습이다. 나뭇가지 끝에는 솔잎 뭉치들에는 고요와 평화가 얹혀 있다. 주변 숲에서도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기품을 유지하고 있다. 
율전동 은행나무. 은행나무가 가을철에 잎이 한꺼번에 떨어지면 풍년, 하나둘씩 시름시름 떨어지면 다음 해에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있다.

율전동 은행나무. 은행나무가 가을철에 잎이 한꺼번에 떨어지면 풍년, 하나둘씩 시름시름 떨어지면 다음 해에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있다.


  율전동(157번지)에 옛 모습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가 있다. 수령 460년(지정일 기준 420년)이다. 얼마 전까지 '은행나무가 가을철에 잎이 한꺼번에 떨어지면 풍년, 하나둘씩 시름시름 떨어지면 다음 해에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라는 설명 글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침묵과 명상으로 키운 몸집이 볼수록 풍성하게 다가온다.
  광교 역사공원(이의동 399-1)에 느티나무가 있다. 1982년 지정 당시 수령이 370년이다. 이제 400년을 훌쩍 넘었다. 이곳은 이의동 중심인 산의실 마을이었다. 근처 능선에 심온 선생 묘역이 있다. 해서 청송 심씨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동네다. 광교 개발로 마을 흔적은 사라졌지만, 나무는 살았다. 그때처럼 여전히 심온 선생의 묘를 바라보고 있다. 
서둔동 상수리나무. 서호천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무 아래는 의자가 있어 주민들이 쉬고 있다.

서둔동 상수리나무. 서호천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무 아래는 의자가 있어 주민들이 쉬고 있다.


  서둔동(105-1)에는 보호수로 상수리나무가 있다. 2019년 지정 당시 150년 나이였다. 나무는 서호천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무 아래는 의자가 있어 주민들이 쉬고 있다. 나무 열매를 상수리라고 하는데, 도토리라고 많이 부른다. 옛날에는 사람들도 먹었지만, 요즘은 동물이 먹게 둔다. 
  상광교동(130번지)에 느티나무는 1982년 지정 당시 500년이 되었다. 마을 입구에 수호신처럼 서 있다. 오랜 세월에도 건강한 모습이다. 나뭇가지도 많고 잎도 풍성해 젊어 보인다. 산바람에도 휘지 않고 곧게 자랐다. 전체적으로 멋진 모습이 귀족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광교 역사공원 느티나무. 광교 개발 전 이의동 중심인 산의실 마을이었다. 근처 능선에 심온 선생 묘역이 있다.

광교 역사공원 느티나무. 광교 개발 전 이의동 중심인 산의실 마을이었다. 근처 능선에 심온 선생 묘역이 있다.


  하광교동(447-7) 느티나무는 광교산 가는 길에 있다. 1982년 지정 당시 370년이 되었다. 나무 아래 쉼터 시설이 있어 사람들이 시원한 그늘을 즐기고 있다. 나무 앞에 전하는 이야기를 써 놓았다. 옛날에 어느 사람이 광교산에 있는 89개의 절로 마을의 축복을 빌러 갔다. 이 사람은 신심이 어찌나 두터운지 공양을 드리는데 짚신을 신고 가기가 꺼려져, 산에 오르기 전에 짚신을 벗어두었다. 그 짚신이 썩은 자리에서 느티나무가 나고, 나무가 자랄수록 마을에 많은 복이 내렸다고 한다. 
하광교동 느티나무. 나무 아래 쉼터 시설이 있어 사람들이 시원한 그늘을 즐길 수 있다.

하광교동 느티나무. 나무 아래 쉼터 시설이 있어 사람들이 시원한 그늘을 즐길 수 있다.


  보호수는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 시간이다. 나무는 고단함을 맨몸으로 견디며 곧게 크는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온갖 비바람에도 비명을 지르지 않고 내면으로 단단함을 키우며 산다. 나무의 경이로운 모습에 사람들은 안녕을 빌고, 풍년을 기원했다. 
상광교동 느티나무. 산바람에도 휘지 않고 곧게 자랐다. 전체적으로 멋진 모습이 귀족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상광교동 느티나무. 산바람에도 휘지 않고 곧게 자랐다. 전체적으로 멋진 모습이 귀족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나무를 사랑한다. 바람에 근심을 날려 보내고 마음속 그리움을 잘 삭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에 평화가 온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갈색 이파리를 보인다. 지나는 계절의 아쉬움을 달래는 낭만을 주기도 한다. 가을 나무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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