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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효심이 남긴 길, 수원화성에서 사도세자를 만나다!
'화성행궁'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배우는 살아 있는 역사
2025-11-03 11:24:32최종 업데이트 : 2025-11-03 11:24:30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선영
뮤지컬 한 편에서 시작된 이야기, 무대의 여운을 따라 수원화성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뮤지컬 한 편에서 시작된 이야기, 무대의 여운을 따라 수원화성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공연과 전시 보는 일을 취미로 삼고 있다. 마음이 머무는 곳마다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 속에서 삶을 다시 배우게 된다. 얼마 전 창작뮤지컬 <쉐도우>라는 작품을 관람했다. 그속에서 낯익은 이름이 등장했다. 등장인물은 사도세자와 영조, 줄거리는 뒤주에 갇힌 첫날 밤에 벌어진 일이다. 사도가 자신의 이름을 적은 옥추경을 붙이는 순간, 그 틈을 열고 과거로 이동한다는 설정이다.

사실일 리는 없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오래 남았다. 이후에도 여러 생각이 스쳤다. 사도의 비극이 '이야기'로만 남는다면, 누군가는 그를 오해하지 않을까? 픽션이지만 역사 속 인물의 삶을 다루는 만큼, 진짜 사도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극이 끝난 뒤, 객석을 나서며 떠올랐다. "수원화성에 남아 있는 사도세자의 흔적을 직접 찾아가 보고 싶다!"

대개 수원화성이라 하면 정조의 도시로만 기억된다. 하지만 그 시작은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마음'이다. 정조가 화성을 축성한 이유, 그 중심에는 사도세자의 무덤 '현륭원'이 있었다. 효심이 성곽이 되고, 사랑이 도시가 된 곳. 그래서 수원은 지금도 '효의 도시'라 불린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마주한 사도세자와 정조의 시대, 한 왕조의 비극과 효심이 마주하는 시간이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마주한 사도세자와 정조의 시대, 한 왕조의 비극과 효심이 마주하는 시간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첫걸음으로 수원화성박물관을 찾았다. 1층 입구에서는 특별기획전 '천년효행, 그 8일'이 열리고 있다. 전시실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수원화성의 축성과 조선 후기 문화의 황금기를 소개하는 공간이 펼쳐진다. 안내문에는 '영조–사도세자–정조'로 이어지는 세대를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표현해 두었다.

정조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묘소를 수원부 화산으로 옮기고, 그 과정에서 수원의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며 새로운 도시를 세운 이야기가 그려진다. 전시장 한켠에는 사도세자의 친필 탑본과 '현륭원 천장도'가 나란히 놓여 있다. 두 작품만으로도 정조의 효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역사는 책이 아니라, 걸음으로 배우는 것. 사도의 삶이 그곳에 있었다.

역사는 책이 아니라, 걸음으로 배우는 것. 사도의 삶이 그곳에 있었다.


사도세자의 삶을 떠올리면 많은 이들이 '뒤주'를 먼저 생각하지만, 그는 단지 비극의 상징으로만 남을 인물이 아니다. 1736년 두 살의 나이로 왕세자에 책봉된 뒤, 1749년부터는 영조를 대신해 국정을 맡았던 총명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궁궐 안의 정치적 갈등과 부자 간의 오해는 점점 깊어졌고, 결국 1762년 여름 그는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했다. 그날의 비극은 왕조의 상처이자, 한 인간의 이야기로 남았다.

사도세자의 글씨를 다시 바라본다. 붓끝의 선이 단단하고 곧았다. 그 안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아들의 마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던 한 인간의 간절함이 담겨 있지 않을까? 활자로만 읽던 인물이 눈앞의 글씨로 다가오는 순간, 역사는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변했다. 이번에는 화성행궁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뒤주가 남은 자리, 행궁 안쪽 '유여택'. 시간은 멈췄지만 이야기는 여전히 흐른다.

뒤주가 있는 장소는 행궁 안쪽 '유여택', 사도의 흔적을 체험할 수 있는 역사 공간으로 남았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아버지의 묘를 참배할 때 머물던 임시 궁궐이다. 행궁의 돌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정조의 마음이 느껴진다. 효심이 도시의 설계가 되고, 아버지의 이름이 건축의 이유가 되었던 곳. 정조는 단지 효를 실천한 군주가 아니라, 도시를 통해 효를 구현한 사람이었다.

행궁 안쪽에는 '유여택'이라 불리는 건물이 있다. 정조가 신하들과 정무를 논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뒤주 체험이 열리는 공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내부에는 실제 크기의 뒤주가 전시되어 있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관람객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개방된다.

뒤주가 남아 있다. 침묵 속에서 오래된 세월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뒤주가 남아 있다. 침묵 속에서 오래된 세월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손바닥으로 나무틀을 천천히 더듬었다. 아이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작은 공간이다. 원래는 곡식을 담던 생활용기가, 어느 날엔 한 사람의 마지막 공간이 되어버렸다니... 나무 결을 따라가던 손끝이 잠시 멈췄다. 그 순간, 역사는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손끝에서 전해지는 현재가 되었다.

정조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다. 1794년 공사를 시작해 불과 2년 만에 완공된 수원화성은 조선 후기 기술의 결정체였다. 거중기와 녹로 같은 신기술이 동원되었고, 백성과 관이 함께 참여했다. 단순한 군사 요새가 아닌, 행정·상업·문화가 어우러진 계획도시였다.

화성행궁에서 팔달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성곽길을 걷다 보면 '효원의 종'이 자리한 서장대로 이어진다. 정조가 세운 이 도시는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마음이자, 백성을 향한 왕의 약속이었다. 돌 하나, 길 하나마다 그 마음이 남아 있었다.

화성행궁, 정조의 효심이 머물던 궁궐.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한 도시의 역사가 되었다.

화성행궁, 정조의 효심이 머물던 궁궐.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한 도시의 역사가 되었다.


하루 동안 수원화성 속에서 역사 공부를 했다. 요즘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창작공연이 많다. 역사를 예술로 풀어내는 시도는 흥미롭지만, 그것이 어디까지나 '픽션'이라는 점을 관객이 잊지 않아야 한다. 사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무대일수록, 우리는 더 정확히 알고 기억해야 한다. 역사를 그대로 옮긴다면 예술의 상상력이 사라지고, 상상만으로 그려낸다면 진실의 무게가 희미해질 테니까.

누군가의 마지막 숨결이 닿은 자리, 그곳에서 역사는 '살아보는 공부'로 바뀌었다.

누군가의 마지막 숨결이 닿은 자리, 그곳에서 역사는 '살아보는 공부'로 바뀌었다.


수원화성 곳곳을 걸으며 나는 역사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예술이 상상력을 더한다면, 현장은 진실을 되살린다. 기록된 문장보다 벽돌 한 장, 비석 하나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역사 공부는 책상 앞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도세자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보고, 정조가 걸었던 행궁의 마당을 밟으며 그들의 삶을 '살아보는 공부'를 했다. 픽션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예술이 역사를 다시 쓰는 그 자리에서 오늘의 나 또한 작은 기록자가 되었다.


[수원화성박물관 이용안내]
○ 주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1 (매향동)
○ 운영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매표 마감 오후 5시)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및 법정 공휴일 익일
○ 입장료 : 어른 2,000원 / 청소년·군인 1,000원 / 어린이 및 65세 이상 무료
○ 문의 : 031-228-4242

[화성행궁 이용안내]
○ 주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남창동)
○ 관람시간
하절기 (3월~10월) 오전 9시 ~ 오후 6시
동절기 (11월~2월) 오전 9시 ~ 오후 5시
○ 입장료 : 어른 2,000원 / 청소년·군인 1,500원 / 어린이 1,000원
○ 야간개장 : 5월~11월 금·토·일요일 및 공휴일 오후 6시 ~ 9시 30분 (입장 마감 9시)
○ 문의 : 031-29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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