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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속으로 빠져드는 융건릉의 늦가을 풍경
저물어가는 단풍을 즐기며 역사도 공부할 수 있어...
2025-11-17 16:02:01최종 업데이트 : 2025-11-17 17:09:01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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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을 관람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작가는 머리로 글을 쓰고 기자는 발로 기사를 쓴다'는 말처럼 필자도 가을 정취를 느끼며 정조 임금 생애(生涯)의 역사를 살펴보려고 15일 화성에 있는 융건릉을 찾아갔다.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파란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온화한 날씨에 휴일이라 그런지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융건릉의 가을 정취를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융건릉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소나무, 도토리나무 등 숲이 어우러져 그늘집이 좋고 잔디밭도 있어 소풍 장소로 안성 맞춤이다. 하늘을 뒤덮은 수목들과 굽이굽이 오솔길은 연인들의 산책길로도 좋다. 또 조선시대 한 왕실의 생애를 살펴보는 역사 관광지로 관광의 가치와 의미가 깊은 곳이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 데이트하는 연인들, 친구들과 함께온 사람들, 유모차에 유아를 태우고 온 젊은 부부 등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겨울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늦가을의 정취를 즐기려는 관람객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융건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합장한 능(사적 206호)으로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매표소를 지나면 왼편에는 융건릉 역사문화관이 있다. 역사문화관에는 장조(사도세자)와 정조의 생애가 담긴 기록과 영상을 볼 수 있다. 오른편에는 재실(齋室)이다. 재실은 제례를 하기 전 제관들이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다. 제례를 지내기 전 제관들이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재실. 관광객들이 살펴보고있다.
재실을 지나 융건릉으로 가는 길 양편에는 버겁이 거북등처럼 갈라진 노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정조는 소나무를 심어놓고, 송충이가 갉아먹자 송충이를 잡아 이빨로 깨물었다는 일화도 있다. 정조는 왜 그처럼 소나무를 애지중지했을까? 융건릉으로 가는 소나무 숲길에서 손자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소나무 숲길 따라 40여 미터쯤 가면 이정표가 있다. 곧바로 가면 소나무 숲이 하늘을 덮어 한 여름에도 걷기 좋은 산책길이다. 산책길은 약 2.2 킬로미터로 1시간 거리다. 왼편 길로 들어서면 융릉이고 오른편 길로 가면 건릉이다.
융릉으로가는 도토리나무 숲 길
융릉길을 가다 보면 도토리나무 숲 속 의자에 앉아 맑은 공기 마시며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사람들, 흙길이 건강에 좋다 하니 맨발로 걸으며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도 있다. 길가에는 낙엽과 같이 떨어진 도토리들이 즐비하다. 지금은 도토리묵을 쑤어 반찬으로 먹지만 옛날에는 관아에서 도토리를 수거해 흉년이 들면 식량 대용으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도토리나무 숲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관광객들
이런저런 구경을 하면서 융릉에 도착했다. 융릉(隆陵)은 장조(사도세자)와 헌경왕후(혜경궁홍 씨)의 합장능이다. 장조(莊祖1735~1762)는 21대 영조의 아들이자 22대 정조의 아버지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예와 무예에 뛰어났다. 영조는 세자 선(본명)에게 정치학습으로 정무를 맡겼다. 세자 선은 정무를 보면서 노론파와 마찰을 빚게 되고 나경언의 고변으로 영조와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져 결국은 28세 나이로 뒤주에 갇혀 비참한 최후의 생을 맞이하게 된다.
융릉을 살펴보는 관광객들
그후 영조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사도세자'라는 시호를 내렸다. 정조는 11세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장헌 세자로 추존돼 배봉산에 있는 사도세자의 무덤을 이곳으로 옮기고 현륭원이라 하였다.
관람객들은 융릉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느라 분주하다. 되돌아와 건릉에 도착했다. 건릉을 가려면 입구 개천에 돌다리 원대황교(元大皇橋)를 건너게 된다. 다리를 건너면 왼편에 곤신지(坤申池)라는 둥근 연못을 만날 수 있다. 곤신지는 1789년(정조 13년) 매봉산에 묻힌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금의 융릉으로 이장한 이듬해 조성된 연못으로, 조선 왕실 중 드물게 연못을 원형으로 조성한 곳으로 '용의 여의주' 형상이라고 한다. '용의 여의주'를 상징하는 연못을 살펴보는 관람객들 홍살문을 지나 건릉이다.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와 효의 와후 김 씨의 합장능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둘째 아들로 할아버지 영조가 별세하자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동안 당파와 신분의 구별 없이 능력과 학문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였다. 학문 연구기관인 규장각을 설치하였고 수원화성(華城)을 축조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관광객들은 건릉을 배경으로 일행들이 단체 기념촬영을 하기도 한다.
건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는 관광객들
오산에서 친지들과 함께 온 60대로 보이는 한 관람객을 만나 관람 소감을 물어봤다. "봄·가을 관광지를 다녀봤지만 꽃이나 단풍은 잠시 눈으로 보는 즐거움일 뿐, 지나고 나면 잊혀지는데 융건릉은 숲이 우거져 공기도 좋고 단풍도 즐기며 조선 왕실의 역사를 알기 좋다. 왕릉을 살펴볼 수 있어 관광의 가치와 의미가 깊다면서 융건릉에 오기를 잘했다"라고 한다.
○ 관람시간 - 2월~5월/ 9월~10월 09:00~18:00 - 6월~8월: 09:00~18:30 - 11월~1월 09:00~17:30. ○ 관람료 - 만 24세 이하 청소년 무료. 만 65세 이상 무료 ○ 휴일 : 매주 월요일 ○ 주차 가능: 무료 ![]()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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