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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물든 칠보산에 사찰의 향기 따라 걷는다
용화사·무학사·개심사를 도는 마음의 순례
2025-11-17 11:50:23최종 업데이트 : 2025-11-17 11:50:21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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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입구에서 칠보산 오르는 등산로. 가을이 깊었다. 가을이 깊어지며 칠보산 표정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그 손짓을 따라 칠보산에 오른다. 단풍이 산허리를 감싸고, 바람결엔 낙엽이 스르륵 하며 발걸음을 따라다닌다. 이 계절 칠보산 품으로 들어서면 단풍보다 더 붉은 마음의 고요를 만난다. 산에 자연도 좋지만, 정상에서 수원 시내도 내려다보고 저 멀리 있는 산들을 볼 수 있는 맛이 있다. 칠보산은 그 이름처럼 예부터 보물이 있었다고 전한다. 산삼, 맷돌, 잣나무, 황금 수탉, 호랑이, 절, 장사, 금 등 8가지 보물이 있었다. 그래서 팔보산이라고 불렀다. 이 중에 사람들이 황금 수탉을 손에 쥐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욕심에 하늘이 분노했고, 황금 수탉이 사라졌다. 이때부터 원래 이름 팔보산을 칠보산으로 고쳐 부르게 됐다. 용화사. 붉은 단풍나무가 마음도 물들인다. 보물 이야기는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따져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칠보산에는 여러 증거물이 있다. 맷돌 재료가 되는 돌이 많고, 잣나무도 많이 큰다. 절도 많다. 산 높이가 239m로 낮은데, 안산 쪽으로 칠보사, 그리고 화성 쪽으로 일광사 등이 있다. 수원시 쪽에서 오르면 용화사, 개심사, 무학사가 있다. 칠보산에 자유학교 입구를 지나면 산 품속에 용화사가 합장을 하고 있다. 이름처럼 '용이 노니는 꽃의 절'이라 불릴 만큼 이곳은 기운이 맑고 고요하다. 오래된 나무 아래 돌부리에 앉으면, 은은히 들려오는 목탁 소리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한데 어우러진다. 법당을 지키는 키 큰 단풍나무는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유난히 붉은색을 자랑한다. 나무 앞 화단에 국화는 처마 끝 풍경과 눈 맞춤을 하고 있다. 무학사 윗절. 시골집 같은 작은 사찰이지만 석탑도 있고, 범종도 있다. 용화사는 조그만 절이지만, 일반 절에서 볼 수 없는 돌부처가 대웅전을 지킨다. 다소 투박해 보이는데, 이와 관련된 미륵불 이야기가 세 개나 전한다. 이는 미륵 이야기가 마을 사람들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다는 뜻이다.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함께 살아오면서 형성된 공동체 의식이 절의 돌부처에 이어졌다. 상촌중학교 뒤편으로 산길을 오르면 가파른 산기슭에 무학사가 앉아 있다. 사자상이 지키는 일주문을 들어서니 허름한 절에 금방이라도 기와가 쏟아져 내릴 듯 위태롭다. 목조 건물도 낡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천년 고찰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노란 나뭇잎은 바람에 밀려 절터 끝으로 구르고, 대웅전 안에서는 수행승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이런 곳에 부처님을 모셨을까. 그 마음이 파란 하늘만큼이나 맑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담는다. 대웅전 주위로 작은 전각들이 있다. 옆으로 산속 동굴을 활용한 참선방이 보인다. 작지만 깊은 여운이 남는 기도실이다. 과거 폐광 터널을 활용해 법당을 지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시골집 같은 작은 사찰이지만 석탑도 있고, 범종도 있다. 그리고 송덕비가 인상적이다. 무학사 아랫절 입구에 일주문. 무학사는 이곳이 윗절이고, 칠보체육관 옆 바람소리공원에 아랫절이 있다. 높은 곳에 오는 것이 불편한 신도들을 위해서다. 아랫절에 "본디 내 것이란 없습니다. 그러니 내려놓아야죠."라는 문구가 있다. 혜성 큰스님의 말씀이다. 사단법인 은빛 사회복지발전협의회 이사장으로 장학사업과 노인복지사업에 헌신하고 있다. 이미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행적이 널리 알려져 있다. 상촌중학교 옆 아파트에 산길이 있다. 거기에 개심사에 오르는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 조막손이 약수터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사내가 활쏘기 대회에 나갔다가 조막손이라는 이유로 쫓겨났다. 조막손을 원망했다. 그러다 칠보산 샘물에서 손을 씻으며 생각을 고쳤다. 이는 낳아 주신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과 같다. 그때 손이 펴졌고, 활쏘기 대회에 나가 우승을 했다는 이야기다. 다시 칠보산 등줄기를 따라 오르면 개심사가 기다린다. '마음을 연다.'는 이름 그대로, 이곳은 등산객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대웅전 앞마당에서는 칠층석탑이 말없이 절을 지키고 있다. 붉게 물든 단풍 숲이 절집을 감싸 안고, 한 줄기 햇살이 지붕 위에 내려앉는다. 마치 가을이 절정을 이루는 순간처럼, 세상의 모든 빛이 이곳으로 모여드는 듯하다. 개심사. 대웅전 앞마당에서는 칠층석탑이 말없이 절을 지키고 있다. 절 마당을 거닐다 보면 발걸음이 느려진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을 여는 일임을 안다. 도심 속 가까운 곳에 이렇게 호젓함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있어 행복하다. 깊어가는 가을 산자락을 따라 절을 만났다. 사찰은 긴 세월 혼자 맑아지고, 목탁 소리는 잘 가라앉은 적막에서 노닌다. 절을 잇는 산길은 은행잎이 지천이다. 사진으로 담으면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같다. 이 길 끝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을을 만난다. 절에서 물끄러미 풍경을 훑다 보면 '비움'이라는 단어가 스며 온다. 세속의 욕심도 내려놓으라고 한다. 절에서 잠시 머물면 당신의 마음도 천천히 물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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