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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길, 삼남길을 걷다
조선의 대동맥에서 오늘의 시민길로… 수원을 관통한 경기옛길 제5길 ‘중보들길’
2026-01-27 15:26:11최종 업데이트 : 2026-01-27 15:26:09 작성자 : 시민기자 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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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0대 대로 가운데 삼남대로를 기반으로 한 삼남길은 서울 숭례문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이어지는 국가 간선 교통로로, 충청·전라·경상을 잇는 한반도의 대표 옛길이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충청·전라·경상으로 이어지던 국가 간선도로 '삼남길'. 그 역사적 길이 오늘날 시민의 발걸음으로 다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수원을 관통하는 경기옛길 제5길 '중보들길'을 따라 서호공원에서 배양교까지 약 9.1km를 걸으며, 길 위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자연, 그리고 도시의 현재를 살펴봤다. 한반도의 동맥, 삼남길의 역사적 의미 삼남길은 조선시대 10대 대로 가운데 하나인 삼남대로를 기반으로 조성된 대표적 간선로다. 서울 숭례문을 기점으로 충청·전라·경상을 거쳐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까지 약 1,000리에 이르며, 행정·군사·물류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학자와 관리, 상인과 백성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 길을 오가며 조선 사회의 흐름을 만들었다.
수원을 지나는 삼남길, 경기옛길 제5길 '중보들길' 삼남길 가운데 수원을 관통하는 구간 중 '경기옛길 제5길 중보들길'이 있다. 이구간은 서호공원 입구를 출발해 항미정, 옛 수인선 철교, 고색중보들공원, 황구지천 솔대교를 거쳐 수원·화성시 경계인 배양교까지 이어진다. 전체 거리는 약 9.1km로, 보통 2시간 남짓이면 완주할 수 있다.
이번 답사는 조선시대 선비가 과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마음을 떠올리며 서호공원에서 시작했다. 길 곳곳에는 안내표지와 리본 형태의 이정표가 설치돼 있어 초행자도 어렵지 않게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수원을 관통하는 경기옛길 제5길 중보들길은 서호공원에서 출발해 항미정, 옛 수인선 철교, 황구지천을 따라 배양교까지 이어지는 역사·생태 탐방로다. 탁 트인 중보들을 가로지르며 걷는 길 중보들길의 출발점인 서호공원은 조선 후기 정조가 수원의 농업 진흥을 위해 조성한 인공저수지 '축만제'가 자리한 곳이다. 축만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풍요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현재도 인근에 농촌진흥청 시험장이 남아 농업 연구의 맥을 잇고 있다.
정조가 수원의 농업 장려를 위해 조성한 인공저수지 서호 축만제(서호공원)는 오늘날 서호공원으로 조성돼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호공원에서 만난 60대 한 시민은 "예전에는 서호를 그냥 공원으로만 생각했는데, 삼남길이라는 설명을 듣고 걸어보니 발밑의 길이 다르게 보였다"며 "조선시대 사람들이 오가던 길을 지금 내가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축만제는 단순한 저수지를 넘어 정조의 개혁정신과 수원의 농업 기반을 상징하는 공간이며 오늘날에는 시민 휴식과 생태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항미정, 풍경과 역사가 만나는 자리 호수 남쪽 제방 끝에 자리한 항미정은 중보들길의 백미로 꼽힌다. 1831년 화성유수 박기수가 세운 정자로, 이름은 중국 항주의 서호를 미목(眉目)에 비유한 소동파의 시구에서 유래했다. 항미정에서 바라보는 서호의 해질녘 풍경은 '서호낙조'로 불리며 수원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1831년 건립된 항미정은 서호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정자로, 수원 8경 가운데 하나인 '서호낙조'의 대표적인 조망 지점이다.
옛 수인선 협궤철도, 산업화의 흔적 항미정에서 서호천을 따라 걷다 보면 지금은 운행이 중단된 옛 수인선 협궤철로를 만난다. 수인선은 1937년 개통된 협궤철도로, 인천 송도와 수원을 잇는 노선이었다. 경기만 일대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과 내륙의 쌀을 인천항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나, 경제성 악화로 1995년 12월 31일 영업을 종료했다.
1937년 개통된 수인선 협궤철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철교로, 경기만 염전과 수원 내륙을 잇던 산업유산이다. 옛 수인선 철교는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기의 물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산업유산이며, 걷는 길 위에서 과거의 철길을 만나는 경험은 중보들길만의 특징이다. 옛 수인선 철교 앞에서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 시민은 "황구지천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평탄해서 걷기 운동에 적당하다"며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철도와 산업유산까지 함께 볼 수 있어 걷는 재미가 배가된다"고 평가했다. 황구지천 따라 배양교까지 옛 수인선 철교에서 5분정도 내려오다가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고색중보들공원을 지나 황구지천 솔대교에 이르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황구지천은 의왕 왕송호수에서 발원해 수원·화성·오산·평택으로 흐르는 하천으로, 중보들길 후반부는 이 하천을 따라 이어진다. 솔대교에서 배양교까지 약 2.7km 구간은 비교적 완만해 시민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고색중보들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던 30대 직장인 한 시민은 "도심 가까이에 이런 길이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며 "퇴근 후 가볍게 걸으며 머리를 식히기에 딱 좋은 코스"라고 말했다. 의왕 왕송호수에서 발원한 황구지천은 수원과 화성을 지나 평택까지 흐르며, 중보들길의 후반부를 따라 자연 친화적인 산책로를 형성하고 있다. 황구지천 구간을 걷던 70대 한 시민은 "예전 농촌 시절의 하천 풍경이 떠올라 정겹다"며 "길이 잘 정비돼 있어 나이 들어서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황구지천 배양교 인근에 설치된 경기옛길 이정표로, 중보들길의 진행 방향과 주요 지점을 안내하고 있다. 과거의 길에서 시민의 길로 배양교는 수원과 화성의 경계선이다. 조선시대 삼남길이 그러했듯, 이 길은 오늘날에도 지역과 지역을 잇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국가의 대동맥이었던 삼남길은 이제 시민의 일상 속 걷기길로 재탄생했다.
역사의 흔적과 자연, 도시의 현재가 어우러진 중보들길은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수원의 정체성을 되새기는 공간이다. 길 위를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또 하나의 기록이 되고 있다. ![]()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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