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챌린지’ 넘어 수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길
수원시 코로나19 브리핑 현장마다 달려온 베테랑 수어통역사
2020-06-22 09:58:01최종 업데이트 : 2020-11-04 14:50:59 작성자 : e수원뉴스 김보라
|
김종옥 수어통역사 매일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리는 코로나19 브리핑 현장. 발표자만큼 시선을 사로잡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옆에서 브리핑 내용을 수어로 전달하는 수어통역사다. 이들은 현장에서 유일하게 마스크를 끼지 않은 채 몸짓과 표정으로 브리핑 내용들을 전달한다. 김종옥(52) 수어 통역사를 만나 그들의 세계에 대해 들어보았다.
"출근길이었어요. 늘 지나던 길이었는데, 이날따라 길가에 붙어있던 수화교실 홍보지가 눈에 확 들어오더라구요."
어느덧 30년 전 일이라며 환하게 웃는 김종옥씨. 그 길로 '농아인협회'에서 하는 수화교실에 등록했다. "91년도쯤인데 당시만 해도 환경이 열악했어요. 배우는 동시에 현장에 투입되는 게 다반사였죠." 기초반 3개월, 중급반 3개월이 끝날 무렵 바로 의료봉사단에 투입됐다. 어느 날은 청각장애 아동이 있는 가정에 방문해 엄마와 자녀의 대화를 통역해주기도 했다. 서툰 실력이었지만 현장에서 뛰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실력도 빠르게 늘었다. "힘은 들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이후 시간이 될 때마다 농아인협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98년 경기도농아인협회에 입사했다. 점점 욕심이 났던 그녀는 2002년 수화통역과가 처음으로 개설된 한국복지대학교 수화통역과에 입학했다. 그녀 나이 서른다섯. 과에서는 왕언니로 통했다. 15살 어린 동기들과 기차를 타기 위해 깔깔거리며 뛰기도 하고, 수어를 알려주기도 하며 공부했다. 젊은 교수들은 김씨와 현장 실무에 대해 의논을 하기도 했다. 학업과 육아, 살림을 동시에 한다는 게 버거웠지만, 모두 다 포기할 수 없었다. 전공 이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편입했고, 한신대학교 사회복지실천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땀과 눈물로 공부했다"며 특히 남편의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 말한다. 수어통역사는 표정과 몸짓 외에 다른 게 주목의 대상이 돼선 안된다. 옷은 검정 등 무채색 계열만 입고, 장신구도 하지 않는다. 그래야 오로지 수어에 집중시킬 수 있다. 김종옥 통역사가 "감사합니다"를 수어로 전하고 있다. 늦은 밤 울려오는 전화에 달려가기 부지기수 청각장애인은 병원에 가거나 휴대폰을 구입하는 등 일상적인 부분에서도 수어통역이 없으면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청각장애인의 일상 속에서 필요한 모든 부분을 대신해 주는 것이 수어통역사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라 말하는 그녀. 늦은 시간 김씨를 찾는 전화가 오면 달려가길 부지기수다. "병원 응급실에 불려가기도 하고, 수화통역센터에서 도움을 요청해 가기도 해요. 시장에서 상인과 다툼이 일었다며 연락이 오기도 하고요." 요즘엔 화상통화를 이용해 그녀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루는 밤 12시 직전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 일도 있었다. 경찰서는 바로 통역이 돼야 하는 상황이라 지체 없이 나갔는데, 막상 집에 돌아오려 하니 막막했었다며 웃는다. "운전이 서툴러서 대중교통으로 다니는데 새벽이 되니 차도 없고, 당시 외진 곳이어서 너무 무섭더라고요." 제일 안타까운 건 가족간의 소통이 안 될 때라고. 자녀는 농인인데 부모는 수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단다. "형제자매끼리 소통이 어렵기도 하고…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안 좋아요." "반백 할머니 돼서도 통역하고 싶어요" 수어 통역사 생활 29년 중에 요즘처럼 뿌듯한 나날도 없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수어는 국어와 동등한 언어로 인정받았지만 세간의 인식은 미미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반전 아닌 반전이 생겼다. 코로나19 재난브리핑 현장에 수어 통역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 된 것. 김씨는 "수어를 하나의 언어로 인식한 의미있는 변화"라며 "수어 사용자인 농인이 정보 접근이라는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농인분들로부터 고맙다"는 연락을 많이 받기도 한단다. 얼마전에는 중학교 세 곳에서 수화통역사 직업소개 과정을 선보여 달라는 요청도 받았다며 "확실히 이전보다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으로는 자칫 자신들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지 않을까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관심을 받아야 할 주체는 통역사가 아닌 농인들이기 때문이다. 김종옥 통역사가 표정도 수어가 가진 문법 중 하나라며 표정과 동작의 동반 없이는 의미 전달이 어렵다고 말한다. '수원시 코로나19 긴급브리핑'에서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놀라는 표정을 짓는 것도 온몸으로 단어와 문장을 표현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사진/포토뱅크 김기수) 수원시와 2011년도부터 일하고 있는 김종옥씨는 그럼에도 앞으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보다 많은 관심과 시스템을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시민들이 농인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고,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세상을 꿈꾼다했다. "현장에서 뛸 때 가장 즐겁고 희열을 느껴요. 반백머리 호호할머니가 돼서도 현장에서 일 하고 싶어요" 그녀의 열정과 헌신에 박수를 보낸다. *수어통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4개 과목의 필기시험과 3종류의 실기시험으로 이뤄진 자격증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현재 수원시에서는 수어교실 2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시민 누구나 기초반부터 고급반까지 단계별로 수강할 수 있다. *경기도농아인협회 수원시지회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로 211, 수원시장애인복지센터 2층/254-0036) *경기도수어교육원 (경기도농아인협회) (수원시 장안구 정조로 946, 3층/1577-8690) *코로나19 관계로 사전 운영 문의 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