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1동행정복지센터에서 일자리사업 참가자로 근무하고 있는 김찬순 씨
'장애인일자리사업'은 취업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사회참여 기회와 소득보장을 통한 자립 기회를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정자1동행정복지센터에서 장애인일자리사업 참여자로 근무하고 있는 김찬순(59)씨를 만나보았다.
"시댁인 진주에 내려가는 날이었어요. 비도 많이 오는데다 그날따라 아홉 살 둘째 아들이 가기 싫다고 유난히 보채 내려 가야하나 고민이 많이 됐어요." 하지만 혼자 둘 수 없어 출발했고, 김씨 가족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었다. 김천을 지나던 중 빗길에 미끄러지는 차사고로 작은아들과 작별 인사도 못한 채 이 세상에서의 인연을 끝맺어야 했던 것 이다.
이 날의 사고로 그녀 또한 아홉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내 나이 서른아홉에 아들을 잃고, 나는 장애인이 되었다"며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인줄 알았다고 표현했다. 잔인한 현실에 몸서리치는 나날들이었다. 김씨도, 남편도, 큰 아이도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갑작스럽게 모든 게 바뀌었지만, 변화를 받아들일 시간조차 그녀에게는 사치였다.
"꾸역꾸역 살다보니 어느덧 큰 아들이 군대도 제대하고 대학교도 복학했어요. 일상생활에 익숙해지나 싶을 무렵쯤 되니 남편이 건강검진에서 담관암 진단을 받았네요." 수술을 진행할 수는 있으나, 생사는 보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 눈앞이 캄캄했다.
"남편이 없다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 생각부터 들었어요. 아직 대학생인 아들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남편은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나 건강을 되찾았지만, 김씨는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일할 수 있다는 즐거움
목발을 짚고 일반회사 일자리를 구하러 다닌다는 건 꿈꿀 수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을 누가 써주겠냐'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장애인일자리사업 신청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탈락. 그녀는 "우울한 삶에 절망만 더 가중되는 기분이었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다행히 몇 달 뒤 시청에서 지난번 떨어졌던 일자리에 추가 합격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고 구운동행정복지센터에서 주12시간, 7개월의 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일을 하다 보니 주12시간 근무에 아쉬움을 느꼈다. 이때 장필숙 복지과 담당자로부터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면 일반형 일자리 지원 시 더 유리하니 도전해보라는 조언을 듣게 됐다. "구운동행정복지센터에서 하는 컴퓨터 문화센터에 수업도 있으니 적극적으로 권유해 주셨어요. 그동안 내가 우울함에 빠져 노력은 안하고 무언가 바라기만 했었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 같아요." 이제 과거에서 벗어나 일어서야겠구나 싶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건 마치 온통 어둠밖에 없던 마음에 '희망'이라는 빛이 보이는 것과 같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한 줄기 빛처럼 찾아온 기회를 잡기 위해 정말 노력 많이 했어요." 그날로 컴퓨터 교실부터 등록해 한글과 엑셀 수업을 시작했다.
53년 동안 컴퓨터를 만져보지 않았는데 쉬울 리가 없었다. 반에서도 열등생에 속하던 그녀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큰 아들에게 상담을 하니 하루 5분씩만 본인에게 설명을 들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다.
원격으로 자격증 공부 도움 주던 아들, 합격엿 선물하며 응원 해주던 담당자
울산에서 직장을 다니던 아들은 매일 퇴근 후 원격으로 '엄마의 학습'을 지원했다. 주말에 집에 올라 올 때면 평일동안 공부한 내용을 동영상으로 따로 제작해 건냈다. 그야말로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하루 5분씩만 공부하자 했던 마음이 어느새 하루 5시간씩 공부하고 있었다. "타자를 치다가 손목이 아플 정도였어요. 그래도 공부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며 웃었다.
세 달을 열심히 노력했다. 공부하고 준비하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열정이란 감정이 살아났다. 시험 전날에는 담당자가 합격엿을 선물해주며 응원했다. 자격증 시험 날이 되니 너무 긴장돼 열 손가락을 바늘로 따고 들어갈 만큼 떨어야 했지만 당당히 한글과 엑셀 자격증 모두 취득할 수 있었다.
장애인일자리사업 일반형에 당당히 합격해 율전동행정복지센터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제 자리를 지정받고 업무 설명을 듣는데 어찌나 행복했던지 몰라요" 출근하는 매일 매일이 꿈만 같았다.
그동안은 모든 것이 우울하고 항상 과거에 매달려 살았다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희망을 느끼고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사람 앞에서 당당해졌고, 아침에 눈을 뜨면서도, 버스를 타면서도 오늘 하루도 출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젊은 커리어우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스스로 당차졌다.
"일을 하면서 제 모습을 보니 나오는 말 대부분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였어요. 스스로가 매우 위축 되서 살아왔더라고요." 말 습관도 고쳤다.
물론, 심적으로는 매우 긍정적으로 변했지만 막상 일자리를 나가니 어려움 투성이었다. 처음으로 나간 '직장'이라는 곳은 막막함의 연속이었다.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하는 것인지 고민도 많았다. 그럼에도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처음 배치 받은 과는 복지과였다. 기초연금 관련 보조업무 담당이었지만 기초연금 지식이 없으니 모든 게 어려웠다. 기초적인 용어부터 상담, 신청 방법, 시스템 사용법 등 백지상태였다. 업무적인 어려움이 있는 부분은 메모를 하고 퇴근 후 집에서 해당 부분을 열심히 공부했다. 다음에는 같은 일을 할 때 실수를 하지 않고 싶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다.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지나니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노력'만큼 결과로 보답하는 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녀는 오히려 업무보다 대인관계가 더 어려웠었다고 말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혹시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지는 않을까하는 마음속 우려에 스스로가 거리감을 두고 대했다. 하지만 대인관계의 어려움은 고맙게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해결 됐다.
김찬순씨는 편견없이 자신을 봐라봐주는 동료들 덕에 마음의 벽도 허물어졌다 말했다. 사진은 정자1동 이미경 팀장(좌)과 김찬순씨
"처음 업무를 시작했던 율전동주민센터 주사님부터 현재 일하고 있는 정자1동 주민센터 동장님, 팀장님, 주사님들까지 같이 일하는 모든 분들이 먼저 말도 걸어 주시고 편견 없이 바라봐주셔서 제 마음의 벽도 자연스레 허물어졌어요."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 듯 했다.
정자1동에 출근한지 며칠 되지 않았던 날, 다리가 불편한 김씨를 위해 따로 의자를 마련해주었던 지금의 이미경 팀장님에 대한 고마움도 강조했다. "하루는 출근하고 자리에 왔는데 제 자리 의자가 바뀌어 있었어요. 제 다리가 불편하다고 편안한 의자로 바꿔놔 주셨더라고요. 팀장님은 모르시겠지만, 그 날 숨어서 얼마나 눈물 흘렸는지 몰라요. 너무 감사했었어요." 세심하게 하나하나 챙겨주는 팀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더 열심히 업무에 임했다고 말한다.
이미경 팀장은 "우리 선생님이 정말 성실하고 늘 밝게 일해주셔서 동 분위기도 좋다"며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일을 한지 6년이 흐른 지금도 발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그녀. 이젠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장애인 분들이 과거의 저처럼 우울하고 자신감 없는 생활을 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가진 이런 따뜻하고 좋은 경험을 나눠서 어둠속에 살고계신 분들도 희망의 빛을 보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좋은 기회를 많이 가지셔서 삶을 환하게 비추시길 진심으로 바래요."
장애인일자리사업은?
장애인일자리사업은 취업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서 사회참여와 소득보장을 통한 자립 기회를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만18세 이상 등록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일자리는 4가지유형으로 전일제, 시간제, 참여형, 연계형으로 나뉜다. 공공기관, 비영리민간단체에 배치되어 행정사무보조, 도서관사서보조, 환경정비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매년 11월 200명 규모로 장애인일자리를 선발하고 있으며 2021년 사업은 11월 중 수원시홈페이지를 통해 공개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