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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붓, 한 손에 검을 든 무예 인문학자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시범단 상임 연출 최형국을 만나다
2025-06-26 10:46:59최종 업데이트 : 2025-06-26 10:46:58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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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 평상시에도 조선군 분위기가 나는 복장으로 다닌다. 정조대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장용영을 설치했다. 1785년(정조 9년)에 왕의 호위를 담당하는 장용위를 확대 개편하여 1793년(정조 17년)에 설치했다. 내영과 외영으로 나누어 운영했는데, 내영은 도성을 중심으로, 외영은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배치했다. 역사 자료에서나 볼 수 있는 장용영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수원이 좋아 수원화성을 벗어나지 않고 사는 최형국 박사다. 그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다. 첫인상에서 무예와 학문이 화석처럼 새겨져 있음을 느낀다. 평상시에도 공적인 자리에서도 늘 조선군 분위기가 나는 복장으로 다닌다. 삶의 양식이 이러다 보니 얼굴도 옛사람을 닮았다. 정조의 명으로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한 이덕무, 박제가의 모습이 보인다. 정조대왕을 지킨 백동수 무관이 환생한 느낌도 있다. 최형국은 중앙대학교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조, 무예와 통하다> 등 12권의 연구서를 내고, 관련 분야 논문도 다수 발표했다. (사)무예24기보존회 시범단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시범단 상임 연출을 맡고 있다. 무예 연구와 필요하면 시범도 한다. 흔히 말하는 문무겸비 표상이다. 수원 화성을 지키는 군인들은 어떤 수련을 했는지, 그 무예가 어떻게 몸으로 이어져 왔는지 강의하고 있다. 그는 조선 무예에 빠져 공부만 했다. 세속 잇속에 아랑곳하지 않고, 굳건한 투지와 지치지 않는 뚝심으로 무예 학문에 헌신했다. 특립지사(特立之士)라는 말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작은 체구에서 풍기는 얼굴빛은 얌전하지만, 삶의 아픈 부분도 거침없이 하는 용기가 있다. 무예 이야기를 할 때는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 가치까지 언급한다. 수준 높은 통찰력에서 나오는 담론은 깊이가 있고, 힘이 느껴진다. 나무가 오랜 세월 변함없이 앉아 있다면 그 뿌리는 절대 예사롭지 않다. 마찬가지로 그가 곁길로 거지 않고 오직 무예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평범하지 않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그가 걸어온 길과 보유한 자산을 세상이 언젠가 불러낼 것으로 짐작한다. 마상무예 시범. 무예 연구와 필요하면 시범도 한다. 인터뷰하는 동안 현학적인 지적 역량과 마음속에 햇살처럼 빛나는 신념을 느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학자의 길을 걸어온 인간 최형국의 서사도 감동적이었다. 이런 것이 독자들에게도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Q. 무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지금까지 연구를 지속해 온 원동력은? A. 대학 시절에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탈춤, 사물놀이, 풍물회 활동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 무예, 우리 조선군 경당 등에서 검술 수련을 했다. 사범 자격증도 따면서 전문적으로 가겠다는 생각도 했다. 먼저 호구지책을 위해 차분히 공부했다. 경영학 석사 과정에서 수원 화성의 전통 무예를 활용한 관광 마케팅 전략으로 논문을 썼다. 박사 과정은 역사학으로 진학했고, 박사 논문은 조선 후기 기병 전술과 마상무예 기병 쪽 중심으로 공부하고, 무예도보통지에 마상무예를 중심으로 썼다. 그 후 무예24기 시범 활동 등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무예를 알리는 작업에 매진하게 됐다. 수원 화성박물관에는 무예에 관련된 무기가 있다. 수원화성을 지켰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무기다. 수원 화성을 지키기 위해서 군인들은 어떤 수련을 했는지 그리고 그 무예가 어떻게 몸으로 이어져 왔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정조를 중심에 두고 풀어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무예 학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얕다. 인문학 학술시장도 불황이다. 하지만 이 일을 멍청하게(?) 하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 기록으로 남고 역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 멍청함도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얼굴빛은 얌전하지만, 무예 이야기를 하면 몸과 마음으로 뿜는 언어가 깊어지고 힘이 느껴진다. Q.전통 무예의 가치와 기능에 대해 대중과 어떤 소통을 하고 있나. A. 우리 딸 아이에게 무예를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하는 무예를 꼭 업으로 받아들이게 하지 않는다. 무예를 통해서 얻은 삶의 철학들이 있어 가르치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몸과 마음을 수련하면서 큰 힘을 얻었다. 딸 아이에게도 몸을 단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마음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한다.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에게 가르치는 마음처럼 '홍재 무예 학당 무예 인문학 교실' 강의를 하고 있다. 현재 수원 화성 안에 있는 남창초등학교와 연무초등학교 학생들이 한다. 무예를 좀 응용해 노인 생활체조, 무예 체조, 홍재 무예 체조 등도 한다. 모두가 무예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다지는 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무예 체험을 몸 안에 씨앗처럼 품고 있다가 어려운 일을 풀어나갈 때 힘으로 작동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지금 수원시립공연단 단원들 모집이 어렵다. 이렇게 학생들과 생활인들이 자연스럽게 무예를 익히고 대중화되면 그 문제점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Q. 무예24기 전수관을 운영한다고 했는데, 소개해 달라. A. 전수관은 희망이고, 그냥 연구소, 혹은 학원이라고 할 수 있다. 공부하고 배우고 싶은 사람 있으면 언제든지 모여서 같이 공부하고 운동한다. 수원화성이 아름답다. 과거와 현대가 조화롭게 어울리고, 역동적으로 살아 있는 공간이다. 보통 성곽은 산성으로 따로 있다. 수원화성은 사람들을 넉넉하게 품어주고 있다. 외국인들도 이런 모습에 감탄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계유산으로 자랑만 할 게 아니라, 수원화성을 지켰던 사람들도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역사를 공유하기 위해 무예를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 후손들도 수원화성을 다양하게 기억할 것이다. 무예 체험을 몸 안에 씨앗처럼 품고 있다가 어려운 일을 풀어나갈 때 힘으로 작동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가르친다. Q. 텔레비전, 영화 등에서 무예 관련 자문을 한다고 들었다. 인상 깊었던 자문 과정 등이 궁금하다. A. 넷플릭스로 공개된 킹덤이다. 조선군하고 좀비하고 싸우는 내용이다. 좀비를 가상의 적으로 뒀을 때 조선군이 어떤 대응을 했을까. 가상극이라 해도 사료에 근거해서 대응해야 재밌는 드라마가 된다.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그 진압을 위해 중앙군과 지방군의 방역 시스템 등 군사적인 움직임이 있다. 그리고 좀비가 적이라면 거기에 맞서는 조선군 전술은 어땠을까. 또 좀비가 어마어마한 숫자로 밀고 들어왔을 때 소수의 조선군은 어떤 전략적 움직임을 해야 하는지 등을 자문했다. 당시 군인 등이 입었던 복장, 착용하는 무기, 관직 이름, 호칭 등 다양한 생활사적인 부분과 군사적인 부분들 모두 고증을 통해 이뤄진다. Q. 마지막으로 역사와 무예를 사랑하는 시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무예24기는 수원 향토유적 21호로 지정이 돼 있다. 수원시립공연단이 공연하면서 보존과 명맥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예의 본질은 수련하고 연마하는 것이다. 그게 뿌리다. 뿌리가 깊고 튼튼해야 진정한 꽃이 된다. 일본은 전통 무예인 검도나 유도 등을 학교 체육의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우리도 전통 무예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시도가 필요하다. 국가교육 과정으로 체육교과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리고 충주시 택견원 같은 전수관 건립도 해야 한다. 전수관이 건립되면 안정적으로 전통 무예를 배울 수 있다. 시민들도 일상생활에서 무예를 쉽게 만나고 즐기게 된다. 전시관 마련은 관광객에게도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이렇게 하면 무예가 수원화성과 연계되어 수원만의 특색 있는 콘텐츠가 되고, 창의적인 관광상품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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