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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여름 만나는 제부도 밤마실
2015-08-31 18:46:09최종 업데이트 : 2015-08-31 18:46:09 작성자 : 시민기자   신연정
여행보다는 소풍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몹시 피곤한데 코끝에 바람이 간질간질 할 때, 그럴 때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바다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우리 가족에게 제부도가 그런 행운의 장소다. 
토요일 늦게 까지 회사 일을 하고 돌아온 아빠, 그리고 아빠 퇴근만 눈이 빠져라 기다린 두 아이와 함께 제부도로 향했다. 큰 기대 없이, 바지락 칼국수 한 그릇이면 즐거운 주말로 접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부도에 도착한 시간이 7시 30분, 두 시간 후 쯤 아쉽게도 바닷길이 닫친다고 했다. 제부도를 갈 때 물 때를 알아보고 가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인데, 차타고 가면서 검색해 봐야지 미뤄 둔 것이 그만 이렇게 됐다. 제부도로 이어지는 길 위로 벌써부터 물이 조금씩 차오르는 느낌이다. 그만 차를 돌릴까 망설이다 아이들 실망한 목소리에 액셀을 밟는다. 

두 시간 여 동안 시한부 여행이다. 머릿속에서 째깍째깍 초시계가 울린다. 저녁 장사를 하는 식당 마다 호객 행위가 한창이다. 스파이더 맨 복장을 하고 연신 인사를 해대는 모습을 보면서 몸속으로 주륵주륵 흘러내릴 땀투성이 아저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는 것이 참 신산하다. 

저무는 여름 만나는 제부도 밤마실_1
저무는 여름 만나는 제부도 밤마실_1
 
제부도에는 언제나 철 지난 유원지 느낌을 풍기는 놀이 시설이 있다. 바이킹부터 범퍼카까지 낡기는 했지만 있을 것은 또 다 있는 그런 곳이다. 
밤으로 젖어드는 바다와 반대로 휘황찬란한 불빛이 아이들 심장을 뛰게 한다. 불볕더위를 노래하는 가요가 요란하지만 이미 지나는 바람에 찬기가 느껴진다. 

범퍼카를 타고 나면 바로 다음 코스는 불꽃놀이다. 모래사장을 저벅저벅 걸어 불꽃을 피운다. 아이들은 마치 태어나서 처음 밤바다를 본 것처럼 신나한다. 
눈부신 햇살 대신에 검게 내려앉은 하늘과 흰색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를 보면서 고요한 가운데 즐겁다. 출렁이는 파도를 따라 달리는 아이들, 발끝에 살짝 바닷물이 닫자 간질간질 하다며 깔깔 댄다. 

저무는 여름 만나는 제부도 밤마실_2
저무는 여름 만나는 제부도 밤마실_2
 
불꽃이 탄다. 타 다다닥~펑~펑~오색 불꽃이 터진다. 손에 손에 불꽃을 하나씩 들고 소원을 빈다. 
어떤 소원을 빌었냐고 물으니, 큰 아이는 아빠 엄마 오래 오래 사시라고 빌었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이 앞으로 힘들 때, 지금 이 순간 행복을 기억해 내기를 빌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오늘 밤마실처럼 온통 즐겁지만은 않겠지만, 이런 행복을 느껴 봤으니 세상에 영영 겁먹지는 않을 테지. 

저무는 여름 만나는 제부도 밤마실_3
저무는 여름 만나는 제부도 밤마실_3
 
해변을 지나 제부도를 반 바퀴 정도 돌면 제부도에 단 하나 밖에 없다는 카페가 나온다. 물길이 닫칠 즈음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다. 차를 시켜놓고 카페 안을 둘러보니, 제부도를 다녀간 사람들이 노란 메모지에 자신들의 사연을 적어뒀다. 아이들도 또박또박 이름을 적고 뭔가를 열심히 적는다. 다음에 다시 와서 확인해 보자며 메모지를 소중하게 건다. 

저녁도 먹지 않고 둘러본 제부도, 물길이 서서히 닫히고 섬 초입에 자리한 식당에 갔더니 오늘 밤마실 마지막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캄캄한 가운데 풍겨오는 달콤한 포도향! 
늦여름 포도 향기가 가득했다.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지만 식당 주변이 온통 포토 밭인 모양이다. 해도 달도 기울고, 여름도 저물어 가는 제부도에서, 짙은 포도향 같은 행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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