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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 대장간에서 공생과 멈춤을 배우다
2015-12-28 18:39:47최종 업데이트 : 2015-12-28 18:39:47 작성자 : 시민기자   신연정

집에서 쓰는 칼이 무디면 남편이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무슨 부적을 붙이라는 것도 아니고 백일치성을 드리라는 것도 아니다. 이 말이 귀에 쏙 들어온 건 그깟 칼쯤은 새 것으로 바꾸거나 갈면 되는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내친김에 칼을 갈러 가자는 친구의 말에 재밌기도 하고 사실 칼이 잘 안 들어서 애를 먹던 터라 옳다구나 팔달문 시장으로 향했다.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수원천변을 따라 조금 걸었다. 씨앗 호떡에 부산 어묵까지 군것질 거리들이 먼저 반긴다. 가방에 비닐 포장으로 둘둘 동여맨 식칼 두 개를 갖고 있는 아줌마가 호떡을 호호 거리며 먹는 모습이라니...

친구는 식칼과 과도 한 개를 갈려고 갖고 왔단다. 혹시 칼 가는 값이 새 것 사는 것 보다 더 비싼 건 아니겠지...마트 물정은 훤해도, 대체 칼을 가는 삯은 얼마나 받는지 당체 짐작이 가지 않았다. 호떡 가게 아줌마에게 칼 가는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큰 절 있는 쪽으로 좀 더 걸어야 한단다. 지나는 사람들이 자주 물어 보는지 바로 대답이 나온다. 나만 몰랐지 칼 갈러 오는 사람들이 꽤 있는 모양이다.

팔달문 대장간에서 공생과 멈춤을 배우다_1
팔달문 대장간에서 공생과 멈춤을 배우다_1

'동래 대장간' 그리고 바로 옆은 '흥원 솜틀집' 나지막한 가게 서넛이 마치 50여 년 전쯤의 시간에 딱 멈춰버린 모습이다. 드라마 세트장 같기도 하고 시골 읍내 풍경처럼도 보인다. 여튼 아파트와 상가가 빽빽한 수원과는 영 다른 시간의 모습이다.

'치이익~끼이익' 날카로운 뭔가가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겉모습은 옛 것이어도 손님을 맞는 주인장은 평범한 철공소 아저씨 모습이다.
몇 년 전 까지 전통을 지키는 사람으로 신문과 방송에도 자주 소개가 됐단다. 성함을 여쭙지 않았지만 정대봉이라는 대장장이의 이름을 나 역시 신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45년 가까이 철을 다뤄온 솜씨라 하니, 부엌칼을 맡기기 살짝 민망하다. 조선낫부터 무속인의 작두, 미장용 고급 가위까지 못 만드는 것이 없다는 철장인에게 파나 자르는 부엌칼이라니...하지만 칼을 갈러 왔다는 손님을 반갑게 맞아준다.

나와 친구의 칼이 쓱쓱 갈리는 사이, 나이가 조금 더 있는 아주머니 두 분이 역시나 칼을 손질하러 왔다. 단골이라며 우리에게 멀리서 왔느냐고 묻는다. 아마 아주 먼 거리에서도 대장간을 곧잘 찾아오는 모양이다.

팔달문 대장간에서 공생과 멈춤을 배우다_2
팔달문 대장간에서 공생과 멈춤을 배우다_2

마트에 가면 식칼만 해도 수십 종을 판다. 가격도 천차만별, 브랜드도 가지각색이다. 풀무질을 해가며 직접 쇠를 달구고, 두드리고 날을 새우고...진작에 이런 수고로움은 기계의 몫이 됐다고 여겼다. 가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전통 장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지만 겨우 명맥을 잇는 몇몇의 특별한 사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내 눈앞에서 멈춰버린 시간과 장면이 재생되다니 신기하고도 새로웠다.

대장장이는 바삐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었을까? 변해라~ 바꿔라~숨 가쁘게 몰아쳤을 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다. 고유한 것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 자리에 글로벌 하다는 어떤 것들이 획일적으로 자리 잡았다.
전국 어느 도시나 대형마트와 할인점과 프랜차이즈 빵집과 커피 전문점이 들어섰고, 그러다 보니 예가 수원인지 전주인지 대구인지 외관만 봐서는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역으로 지역의 '고유한' 어떤 것을 찾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열풍이 부는 것이겠지.

팔달문 대장간에서 공생과 멈춤을 배우다_3
팔달문 대장간에서 공생과 멈춤을 배우다_3

팔달문 시장에 부엌칼을 갈러 갔다가 '동래 대장간'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다. 남편이 말을 잘 듣게 될까? 재밌는 기대를 뒤로하고 경쟁과 변화라는 날선 말 대신에 공생과 멈춤이라는 따뜻한 말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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